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문단 편집) == 여담 == * 브레즈네프는 다른 공산당 고위층처럼 화려한 다차(러시아식 [[별장]])를 여러 개 소유하고 있었다. 공산주의 유머로 평생 시골에서 살던 자기 어머니를 불러 다차를 구경시켜주자 어머니는 놀라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참 좋구나, 레오니트.” 그리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볼셰비키]]들이 오면 이건 다 어떻게 될까?”'''[* 해당 유머는 브레즈네프 버전 이외에 [[블라디미르 레닌]]이나 [[이오시프 스탈린]] 버전도 있다.] [[파일:external/i286.photobucket.com/14-SovietleaderLeonidBrezhnevandEas.jpg]] * 브레즈네프는 뜨거운 맨 투 맨, 마우스 투 마우스, ''''입술' '''[[키스]]로도 유명하다. 이 키스는 원래 전통적인 러시아의 인사법이다. 1960년대 러시아에서 영화나 사극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할리우드 영화인 [[닥터 지바고]]에서도 지바고([[오마 샤리프]])와 이복형 예프그라프([[알렉 기네스]])가 처음 상봉할 때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런 풍습이 공산권으로 들어가서 동지들끼리의 우애의 상징이 되었는데 정작 러시아에서는 이런 식의 인사와 동성애를 결부하지 않았다. [[미국]] 같이 [[게이]]에 대한 터부가 강했고 남자들끼리의 육체적 접촉([[손]]잡기, 포옹)이 금기시되는 나라에서는 굉장히 괴악하게 봤다고 한다.[* 농구선수 [[찰스 바클리]]가 당했던 뽀뽀처럼 미국에도 존재는 한다. 다만 구세대의 주책맞은 행동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뿐이다.] 위 사진에서 연출된 뜨거운 키스는 1979년 [[동독]] 창건 30주년 기념으로 방독했을 때 [[에리히 호네커]]와 나눈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을 모사한 그림이 [[베를린 장벽]]의 잔존 구간인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남겨져 있다. [[http://sonnet.egloos.com/3379895|#]] 참고로 브레즈네프의 키스 장면이 공산주의 국가 정상들과의 만남에서 한 것만 부각되어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9년 오스트리아에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만났을 때도 한 적이 있다.[[https://photos.com/featured/president-brezhnev-kissing-jimmy-carter-bettmann.html|#]] 물론 브레즈네프만 한 것은 아니고 브레즈네프의 전임자인 스탈린, 흐루쇼프도[* 특히 흐루쇼프는 마오쩌둥을 만나서도 키스했는데 중국엔 그런 문화가 없었으므로 마오쩌둥은 대단히 불쾌해했다.] 키스를 했으며, 브레즈네프의 후임자들도 했는데, 고르바초프와 호네커의 키스도 꽤 유명하다. * 메모광으로 자신의 정치활동부터 사적인 일까지 모두 3권 분량의 개인수첩에 기록해 두었다. 덕분에 학자들이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연구하기 쉬웠다고 한다. 단 브레즈네프는 배운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서 그가 쓴 글은 문장구조가 기이해서 알아보기가 어렵다. 완벽한 문장은 거의 없고 매우 단편적인 단어들과 비문들만 가득하다. 가령 브레즈네프가 서기장으로 쓴 첫 메모에는 1965-1929=36이라고 적혀 있는데, 역사학자들도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내는 데에 gg를 쳤다. 소련의 장군 겸 역사학자인 드미트리 볼코고노프(Dmitri Volkogonov 1928~1995)는 문법의 기초적인 이해도 없던 사람이라고 브레즈네프를 매우 혹평했다.[* 볼코고노프는 [[보리스 옐친]]의 보좌진을 하던 사람으로, 그가 펴낸 소련 역사서는 옐친 측의 시각이 담긴 역사관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만 볼코고노프도 어느날 갑자기 반공주의자로 돌변한 것은 아니고 반스탈린주의자에서 반레닌주의자로 변해 소련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적 전향을 거쳤다. 어쨌든 러시아 혁명과 소련 수립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소련에 대해 매우 신랄하게 혹평한 사람이긴 하지만, 스탈린이 독소전쟁 승리에 산업화 등을 통해 크게 기여했으며 경험을 통해 전쟁 후반에 어느 정도 전략적 식견을 가지고 도움을 주었다고 인정하는 등 소련 체제에 대한 부분적인 고평가를 남겼기 때문에 정말로 소련을 근본적으로 증오하던 사람들에겐 어줍잖은 회색분자라고 욕을 먹었다. 일단 소련 기밀문서고를 바탕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많이 알린 것 자체는 학계적으로 성과라고 평가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일기장에 별 내용이 없는데 그가 후계자로 내세운 수슬로프가 죽은 날 일기에도 별 다른 얘기가 없다. * 훗날 그의 후임 서기장들 중 하나가 되는 고르바초프와는 사진을 통해 처음 대면하게 되는데, 청년 공산주의자 대표로 고르바초프가 유력하게 천거되었지만 “이 친구 청년치곤 머리숱이 너무 적구먼”하고 반려시킨 일화도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미 그때부터 탈모가 심했던 것 같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https://kr.rbth.com/politics/2017/01/31/tereoriseuteuga-beurejeunepeureul-amsalharyeo-han-iyu_692836|암살 시도]]도 있었다. 미국 [[CIA]]에 의해 일어났다던가 하는 스토리는 아니고 어떤 [[반공|반체제]] 성향의 시민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다. 범인인 빅토르 일리닌은 소련 각지를 여행하면서 소련 TV에서 보여주는 소련의 모습과 현실의 소련 간의 괴리감에 상당히 분노하던 시민이었는데 지하자원 판매대금으로 모든 인민들에게 추가적인 봉급을 주자는 자신의 제안을 담은 편지를 [[크렘린]]에 내보냈다가 아무런 답장을 얻지 못하자, 자신의 주장이 주목을 얻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암살 시도를 했던 것이었다. 이때 브레즈네프의 자동차는 항상 있던 대열이 아니라 후방에 있어서 운좋게도 브레즈네프는 살았지만 우주비행사 2명이 다치고 운전수 1명이 죽었다. 이 차에는 [[알렉세이 레오노프]]와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같은 '최초' 타이틀을 보유한 영웅들도 타고 있었지만 둘은 무사했다. 결국 브레즈네프 암살은 실패했고 빅토르 일리닌은 체포되었다. 빅토르 일리닌은 재판에서 과거 [[정신병]] 경력으로 인해 정신병으로 감형되어[* 사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도 정신병으로 인한 감형은 존재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의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 루치안 스타니아크(Lucian Staniak)의 경우, 정신병자로 분류되어 사형대에 오르는 대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다만 정신이 온전한 시민이 브레즈네프를 쐈다면 체제에 대한 불만이 무르익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므로 의도적으로 정신병자 판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정신병원에 장기간 수감되었다. 그 이후 브레즈네프가 죽고 9년 뒤에야 풀려났고 이후로는 소규모 아파트 1채와 연금을 받았으며, 평범한 소시민으로 아직도 살고 있다. 또한 일리닌은 감금된 정신병원에서 충분히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고 말한다. 이 일이 알려지게 된 것은 냉전이 끝나고 나서였으며 냉전 도중에는 일반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이 사건은 스탈린 이후 소련에서 거물급 인사를 향해 벌어진 유일무이한 암살(시도)사건으로 손꼽힌다. *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답게 겉으로는 종교에 냉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심 정교회 신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과 핵무기 감축 건으로 회담하던 중 카터가 브레즈네프에게 발언을 요청하였다. 문제는 브레즈네프는 원고 없이는 발언하지 않는데, 브레즈네프가 그날 준비한 원고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축사에 대한 화답 뿐이었다. 이에 브레즈네프는 카터의 어깨 위에 손을 얹더니 '''"만약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신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거요!"'''라고 했다.[* 카터 대통령의 구순 기념 회고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들 가만히 있자 자신도 당황했고, 그로미코가 웃기려는 듯이 "예, 저 위에 있는 신이 우리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네요"라는 말을 꺼냈다. 물론 단순한 관용구였을 수도 있으나 평생 정교회 신앙을 유지했던 브레즈네프가 신실한 개신교 신자인 카터를 설득하기 위한 말이었을수도 있다. 브레즈네프의 주치의의 증언에 의하면 유년기에 정교회를 믿는 가정에서 자란 브레즈네프는 평생 정교회 신앙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며 1982년 건강이 악화되자 정교회에 의지했다고 말했다.[[http://tatarnews.ru/articles/8018|#]][[https://tass.ru/interviews/6114762|#]]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당시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과 친분도 있었고 이에 따라 정교회에 대한 탄압 정책을 완화하기도 하였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무신론자인 '''척'''을 하고 몰래 신앙심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덕에 소련 해체후 정교회가 다시 활성화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체격이 정말 엄청나게 크다. 특히 어깨 넓이를 보면 이게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이다. *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자동차광이었다. 서독 방문시 빌리 브란트에게 BMW 자동차를 선물받은 이후 자동차에 맛이 들렸는지 서방제 고급 승용차를 특히 좋아해서 [[메르세데스-벤츠]], [[닛산]] 자동차를 구매하기도 했다.[* 다른 사회주의 지도자들인 김일성, 카다르, 차우셰스쿠, 호네커도 자동차광으로 수십대의 서방제 자동차를 보유했다고 한다.] 게다가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리처드 닉슨]]과의 정상회담 당시 [[링컨 컨티넨탈]]을 선물받고선 매우 흡족해하더니 '''닉슨을 태운 채로 다짜고짜 독단적으로 주행을 해버리는 기행을 벌여''' 미소 양국의 보좌관들이 심히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 그 덕에 닉슨은 30분이나 [[핵가방]]에서 멀리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여졌다.[* 30분이면 '''소련의 ICBM과 SLBM이 미본토에 도달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만한 시간동안 미국의 국가원수가 보복 핵공격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상태에 놓였던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 다행이도 우발적 에피소드로 끝났다.] 참고로 브레즈네프의 이 돌발적 행동은 단순히 그가 차에 환장해서가 아니라, 브레즈네프의 약물 중독 때문이기도 했다. 닉슨을 만나기 직전에 브레즈네프는 약물을 복용한 상태였는데 이 때문에 뇌에서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구되어 돌발적으로 마구 밟아버린 것. * 자동차 외에도 양복을 좋아하여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으로 취임한 뒤에는 서유럽의 나라들을 순방할 때부터 고급 양복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져 권력을 잡고 나서는 고급 양복과 서방의 자동차 수집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만 보면 브레즈네프가 개인의 허영에만 몰두한 것 같긴 하지만, 그의 시대에 소련은 피아트와 합작해 새로운 자동차 기종을 개발하고 자가용 보급을 늘렸으며 가전 제품의 개발과 보급, 육류와 유제품 공급에도 신경 썼다. 또한 집권 초기의 브레즈네프는 수 년 동안 코시긴 같은 거물 정치인과 테크노크라트들을 서방 각국에 파견해 정부나 기업들과 의류, 섬유 산업 기술 이전, 기계 구입 계약을 체결했으며 서방 패션쇼에 방문하여 최신 유행하는 의복들에 대한 정보와 서방의 의류 유행을 파악해 소련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제공했다. 소련 수뇌부들의 패션 감각이 보수적인 편이라 의상 제작에 있어 규제나 검열을 많이 적용해 창의성이 넘치는 소련 패션 디자이너들의 발목을 많이 잡고 소련 인민들이 멋지고 개성적인 의복에 갖는 욕구를 잘 해결해주지 못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나름대로 신경은 많이 썼던 것이다. 그래서 고급 양복과 자동차에 대한 브레즈네프의 취향을 이유로 일신의 영달만 추구한 독재자들과 비교하며 그를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 여자를 상당히 밝혔는데, 외국 순방 때 아내 빅토리야를 데리고 가지 않는 이유도 마누라 대신에 애인들을 거느리고 나가고 싶어서(...). 캠프 데이비드 방문 때도 전용기 승무원을 애인으로 대동하고 다니면서 심지어 닉슨 대통령에게 수차례 소개도 시켜주었다. 통역관에게 아내를 대동하고 외국에 가는 것은 으리으리한 성에 석탄을 싣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 적도 있다. 나중에 자신이 좋아했던 브란트가 엽색 스캔들로 사임하게 되자 이를 보고받은 브레즈네프는 분기탱천했는데, 사내가 계집질하는 것은 당연한데 겨우 그딴걸로 시비를 걸어서 몰아내는게 어딨냐는 이유였다.(...) 그리고 브란트의 엽색행각이 사진에 찍혔다는 보고에는 만약 사내답게 사진이 찍혔으면 남성성을 증명해준 파파라치에게 돈을 후하게 쳐줘야 하면서 자신이라면 결코 그딴 일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렇게 여자를 밝히는 브레즈네프의 성격은 의외로 서방 지도자들에게 그가 엄숙한 공산주의 정치가가 아니라 인간적인 지도자로 다가오게 해서 빌리 브란트나 조르주 퐁피두와 꽤 죽이 잘 맞았고, 닉슨은 브레즈네프의 애인 승무원에게 서기장 동무 좀 잘 모시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1973년에 그에게 배치된 개인 간호사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코로뱌코바는 브레즈네프에게 의학적 봉사 뿐만 아니라 이도 닦아주고 맛사지도 해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무엇보다 브레즈네프가 원할 때마다 각종 약물을 공급하면서 브레즈네프 말기에 막강한 비선실세로 자리잡았는데, 1975년에 새로 임명된 브레즈네프의 주치의 미하일 코사료프는 코로뱌코바가 가진 권력을 보고 경악할 정도였다. 참고로 코로뱌코바는 유부녀로, 브레즈네프는 자신이 총애하는 간호사를 위해 그녀의 남편을 KGB 간부로 고속승진시켜주었다. * 손자 안드레이 브레즈네프는 [[크림 반도]]에서 살고 있었는데 소련 붕괴 이후로 여러 정치활동을 했지만 죄다 군소정당이라 그리 큰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으며 2018년 57살의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80711149000080|#]] [youtube(Jwffk9sB1kI)] * 개그물로 패러디된 모습. 배우의 외모도 엄청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youtube(A-Y2OCyk-Pc)] * 이 사람도 [[인간 관악기]]를 피하지 못했다. >어느 날 브레즈네프는 크렘린의 주치의를 찾아가서 수술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내용이 범상치 않았다. > >"의사 동무, 오늘은 [[의젖|가슴 확대 수술]]을 해주시오." > >주치의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 >"아니 브레즈네프 동지,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전환]] 수술이라도 바라시는 것인가요?" > >'''"새 [[훈장(상훈)/소련|훈장]]이 나왔는데 훈장을 달 자리가 없어서 그렇소!"''' >"제기랄! 저 브레즈네프 낯짝 좀 그만 보고 싶군. 악어한테나 잡아먹혀라!" > >"이봐 라비노비치[* [[랍비]](rabbi)를 러시아 이름처럼 바꾼 이름인데, '이반 라비노비치' 등의 이름으로 러시아의 우화 및 농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유대인]]을 상징하는 경우가 대부분.], 악어한테 불쌍한 소리 하지 말라고. '''브레즈네프를 잡아먹으면 2주 동안 똥으로 훈장을 싸지 않겠나?'''" >1969년 1월, 모스크바의 크렘린 성벽 인근에서 [[브레즈네프]]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 빅토르 일리닌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https://kr.rbth.com/politics/2017/01/31/tereoriseuteuga-beurejeunepeureul-amsalharyeo-han-iyu_692836|'''실제 있었던 일''']]이며, 범인의 이름도 실제로 빅토르 일리닌으로, 군인 출신이었던 것 또한 동일하다. 다만, 후술하는 심문 내용은 창작이다.] > >"그나저나 당신이 군인이였다니, 다행히 암살에 실패한 게 더 신기할 따름이군." > >"내가 [[권총]]을 빼들자마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덤벼들었소." > >"과연 인민들이 우리 지도자의 생명을 구했구먼!" > >"'''그게 아니고, 모두 자기가 쏘겠다며 권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실패한 거란 말이오..."''' * 더 자세한 내용은 [[공산주의 유머/소련/정치와 행정]] 참조. 이렇듯 브레즈네프 재임 후기 이후로는 침체되는 경제와 80년대 소련을 괴롭힌 아프간전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으로 인해서 소련 대중들에 있어서 노쇠하고 무능한 지도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 오늘날 러시아 등지에서는 소련 해체 이후 혼란기로 인해 브레즈네프를 그리워하는 여론도 있지만, 이러한 경향은 대체로 [[라떼는 말이야|1960년대와 1970년대를 보낸 40대 이상 중장년 세대들에게 해당된다.]] 현재 러시아의 2,30대들은 최소한 브레즈네프 시대로부터 시간이 지난 1980년대 중후반이나 '''소련 붕괴 (1991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청년 세대 입장에서 브레즈네프는 역사 시간 때 배우거나 과거 시대의 인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 [[흐루쇼프]] 집권 시절 흐루쇼프는 1980년이 되면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로 돌입한다고 호언장담을 했었지만 1970년대 중반에 가면 소련 고위층이나 인민들이나 이 약속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980년에 공산주의는 오지 않지만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은 온다고 자조적인 조롱을 했다고 한다. * [[두꺼운 눈썹|눈썹이 두껍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송승헌도 부럽지 않다는 개드립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